한국은행(한은)이 지난주 기준금리를 연 3.00%로 올리면서 내세운 이유가 물가였습니다. 그런데 뉴스 자막의 “물가상승률 둔화"와 마트 계산대의 영수증은 좀처럼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죠. 장 볼 때마다 만원이 우습게 사라지는데 물가가 잡혔다니. 이 어긋남은 누가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물가상승률이라는 숫자가 만들어지는 방식 자체에서 나옵니다.
나라 전체의 장바구니를 하나 만든다
물가상승률의 정식 이름은 소비자물가지수 변동률입니다. 통계청 공식 설명에 따르면 국민이 일상에서 돈을 쓰는 상품과 서비스 458개를 골라 매달 가격을 조사하고 이걸 하나의 지수로 합칩니다. 말하자면 나라 전체의 평균 장바구니를 하나 만들어 두고 그 값이 1년 전보다 몇 % 무거워졌는지 재는 겁니다.
합칠 때 그냥 평균을 내지 않는다는 게 핵심입니다. 가계가 쌀에 쓰는 돈과 껌에 쓰는 돈은 다르니까요. 지출 비중이 큰 품목일수록 지수에서 무겁게 치는 가중평균 방식이고 이 가중치는 소비 구조가 바뀔 때마다 통계청이 갱신합니다. 전세와 월세처럼 매달 큰돈이 나가는 항목이 지수를 크게 흔들고 어쩌다 사는 물건은 값이 뛰어도 지수에는 잔물결만 남습니다.
내 체감과 어긋나는 세 가지 이유
우선 저 장바구니는 평균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차가 없는 사람에게 휘발유값 하락은 남의 일인데 지수는 끌어내립니다. 아이 학원비가 지출의 절반인 집과 병원비가 절반인 집은 같은 달을 전혀 다르게 체감하죠.
여기에 기억의 습관이 겹칩니다. 사람은 자주 사는 것 위주로 물가를 기억합니다. 통계청도 이걸 알아서 생활물가지수를 따로 발표합니다. 채소나 라면처럼 자주 구입하는 144개 품목만 추린 지수죠. 체감에 가까운 쪽은 이 보조지표입니다.
| 구분 | 소비자물가지수 | 생활물가지수 |
|---|---|---|
| 조사 대상 | 상품·서비스 458개 | 자주 사는 생필품 144개 |
| 쓰임새 | 금리 등 정책 판단의 기준 | 체감물가 보조지표 |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물가상승률은 오르는 속도지 가격표가 아닙니다. 단순화한 가상 예시로, 만원짜리 물건이 작년에 30% 올라 1만 3천원이 됐고 올해는 2% 올랐다고 해봅시다. 상승률 그래프는 30에서 2로 뚝 떨어지지만 가격은 1만 3천원대에서 또 오른 겁니다. “물가가 잡혔다"는 말은 덜 가파르게 오른다는 뜻이지, 한 번 오른 가격이 내려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뉴스와 영수증이 따로 노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집값은 왜 물가에 안 잡힐까
전세와 월세는 지수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내 집을 사는 데 드는 돈은 주 지표에 없습니다. 통계에서 집은 소비하는 물건이 아니라 자산을 사는 것으로 치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에 살면서 치르는 비용은 자가주거비라는 이름의 보조지표로만 따로 계산합니다. 집값이 급등한 해에 물가상승률만 한가해 보이는 착시가 여기서 생기고 이 비용을 주 지표에 넣을지는 통계 당국의 오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숫자 하나가 내 지갑까지 오는 길
한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 연 2%를 물가안정목표로 잡고 실제 지수가 여기서 얼마나 벗어나느냐를 보며 기준금리를 움직입니다. 그 결정이 대출과 예금 금리로 번지는 시간표는 기준금리 글에 정리해 뒀습니다. 국민연금 수령액도 매년 전년도 물가상승률만큼 올려 지급하니, 이 지수는 연금 통장에 찍히는 금액까지 정하는 셈입니다.
매달 초 통계청이 지난달 지수를 발표합니다. 다음 발표 때는 헤드라인의 상승률 하나만 보지 말고, 생활물가지수와 견줘 보시길. 뉴스 속 물가와 내 물가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